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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오늘날 서양 사람들에게 ‘리앙쿠르’라고 알려져 있다. 독도가 언제 서양인들에게 발견되었고, 어떻게 알려졌는지는 독도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1840년대 후반부터 서양인들이 고래잡이를 위해 동해안을 항해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기록 중 최초로 독도를 발견한 서양 배는 미국의 포경선 체로키(Cheorkee)호로 알려져 있다. 체로키호의 선장은 그의 항해일지에 1848년 4월 16월 해도상에는 없는 두 개의 작은 섬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많은 미국의 포경선들이 독도를 발견하였다. 예를 들어, 1849년 3월 18일 윌리암 톰슨 호는 울릉도 동남쪽 40마일 쯤에 어떤 해도에도 없는 ‘3 Rocks’를 보았다. 또한 같은 해 캠브리아호는 항해일지에 4월 28일에 울릉도를, 29일에는 해도에 실려 있지 않은 ‘the small islands’를 보았다고 적고 있다. 또한 그 항해일지에 울릉도와 독도의 그림까지 그렸다.
 
이 외에도 여러 배들이 독도를 발견하고 각자의 이름으로 독도를 불렀다. 이 중에서 서양에서 가장 널리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사용되고 있는 이름은 ‘Liancourt Rocks(리앙쿠르암)’이다. 영문 구글사이트에서 Dokdo를 검색해보면 Wikipedia의 Liancourt Rocks1)이 가장 먼저 검색된다.
 
동해안에서 고래잡이를 하던 프랑스의 배 리앙쿠르(Liancourt)호가 독도를 발견한 것은 1849년 1월 27일이었다. 리앙쿠르 호는 361톤의 포경선이었고, 선장은 갈로르트 드 수자(Galorte De Souza), 일명 장 로페즈(Jean Lopez)였다. 당시 리앙쿠르 호가 취한 항로는 울릉도를 발견했던 프랑스의 라 페루즈 함대가 취한 항로와 비슷했다. 장 로페즈 선장은 귀항 후 1850년 4월 19일에 해군성 소속 해양 경찰 당국에 항해 보고서(일지)를 제출하였다. 독도에 대한 부분은 이곳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당시 해군 제독인 인사국장이 직감적으로 이를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 해도국장에게 공문을 보내 독도의 존재를 알렸다. 아래는 이진명(2005)이 발견한 인사국장의 공문 내용이다.
 
1849년〔조선조 철종1년-지은이〕 1월24일 나는 대한해협 한 가운데 있는 쓰시마 북쪽을 통과한 후, 다줄레 섬〔울릉도-지은이〕으로 향했다. 1월27일, 나는 다줄레 섬이 북동 1/2북 방향으로 바라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그때 동쪽에 큰 암석(roche) 하나가 있었다.
 
이 암석은 어떤 지도와 책자에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이 암석의 위치는 북위37도2분, 동경131도46분이었다.
 
이진명, 독도, 그 지리상의 재발견, 삼인, 2005
이 문서를 통해 독도는 서양인들에게 최초로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공문을 받은 해도국은 해도국 수로과가 발간하는 『수로지』(Annales hydro-graphiques, 2eme semestre 1850, 제4권, 1851년 간행)에 그대로 수록했다. 또한 다음 해 발간한 「태평양전도」에 독도의 정확한 위치를 기재했다. 이 태평양전도에는 울릉도가 마쓰시마로, 독도가 리앙쿠르암(Rocher du Liancourt)으로 표시되어 있다. 인사국장의 문서, 수로지 제4권, 그리고 태평양 전도를 통해 독대는 그 정확한 위치와 명칭이 최초로 서양인들에게 알려지고 공식화된 것이다. 독도의 모도인 울릉도가 프랑스 라페루즈 탐험대에 의해 1787년에 발견되고 ‘Dagelet’란 이름과 좌표가 1797년에 알려진 것에 비하면, 독도는 상대적으로 늦게 발견되고 알려졌다.
 
프랑스 수로지는 1850년부터 프랑스 해군성에 의해 연 2회 발간되는 간행물로서, 전 세계 모든 해양의 해안선, 도서, 암초 등에 관한 정보를 실어 선박의 안전 운항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독도가 ‘리앙쿠르암’으로 소개된 것도 1851년에 간행된 수로지를 통해서였다. 이 프랑스 수로지에는 이후에도 독도에 관한 여러 기록이 실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프랑스 함정 콘스탄틴(Constantine)호가 그린 독도에 관한 그림이다. 수로지(1854~1855년 합판, 제10권, 1856년 발간)에 실린 이 그림은 콘스탄틴 호의 승무원이 그린 것으로 우표만한 크기의 그림이다.
 



이 수로지와는 별개로 프랑스 해군성이 발간한 1867년판 『항해지침』에는 러시아 팔라스(Pallas)함의 시르게프 대령이 1854년 독도를 관측하여 그린 3점의 그림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수로지(1861년판, 제20권)에는 「한국 동해안 및 오사카 만의 수로 서술」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러시아 팔라스(Pallas)함이 동해안을 탐사하고 남긴 글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진명(2005)이 이에 대해 자세히 연구하였으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줄레섬〔울릉도-지은이〕은 보스톡(Vostok) 스쿠너(scooner)선에 의해 관찰되었으며, 그 위치는 북위 37도22분00초, 동경 130도56분05초에 확정되었다. 형태는 원형이고 둘레는 37km이며, 외곽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되어 있어 접근하기가 어렵다. 중략 아르고노트(Argonaut)섬-전에도 언급되었던 아르고노트 섬의 위치는 의심스럽다. 모함 팔라스 호는 물론, 보조함인 스쿠너 선도 이를 보지 못했다.
 
메넬라이(Menelai)와 올리부차(Olivoutza) 바위섬(프랑스 지도의 리앙쿠르암-원주)은 높이 솟은 두 개의 바위이며, 흰 새똥으로 덮여 있어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다. 크로벳(소형군함) 올리부차(Loivoutza)호에 의해 발견되었고, 위치는 북위 37도14분00초, 동경 131동57분05초이다.
 
이진명, 독도, 그 지리상의 재발견, 삼인, 2005

 


프랑스 해군성 수로지(1856년판, 제11권)은 영국 함정의 독도 발견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 글에서 수로지는 영국 함정 호넷(Hornet)이 발견한 독도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영국 수로잡지(1856년)의 내용을 번역하여 소개하였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855년-지은이〕8월〔4월이 맞음-지은이〕 25일 영국 함대가 두 개의 작은 섬 가까이 지나갔는데, 이 두 섬은 지도에 나타나 있지 않은 것이었다. 이 섬들의 위치를 모든 함정에서 정확히 측정했으며, 특히 이 섬들을 아주 가까이 지나가던 호넷(Hornet) 호가 정확히 측정했다. 중략. 이에 대한 호넷 호의 포시드(Charles Cobrington Forsyth) 함장의 보고는 이렇다. ‘나는 북서 방향에 있는 섬을 발견했는데, 그 위치는 북위37도17분9초, 동경131도54분14초이다.’
 
이진명, 독도, 그 지리상의 재발견, 삼인, 2005

 


이 수로지는 영국 수로잡지(1856년)의 내용을 소개함과 동시에 이 섬이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1949년 1월 27일 이미 발견한 것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후 영국은 독도가 프랑스 선박에 의해 이미 발견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명칭도 ‘호넷섬’ 대신에 ‘리앙쿠르암(Liancourt Rocks)’로 사용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양에서 독도는 프랑스 포경선에 의해 ‘리앙쿠르암(Rochers Liancourt)’이란 이름으로 프랑스 「수로지(1851년 발간)」에 처음 등장하였다. 이후 러시아 명칭 ‘메넬라이’와 ‘올리부차’, 영국 명칭 ‘호넷’이 한 동안 사용되다가 1880년대를 지나면서 ‘리앙쿠르’ 하나로 통일되어 사용되고 있다. 현재는 지도에 따라 리앙쿠르와 독도, 그리고 다케시마를 병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모든 서양지도에 독도가 공식 용어로 사용되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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