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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전도에서 찾아본 독도

 
 
고지도란 언제, 누가 제작한 것을 가리키는 것일까? 언제까지 제작된 지도를 고지도라 부르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시대 우리 조상들은 왜 지도를 그렸을까?
 
영어로 ‘old map’이라고 불리는 고지도(古地圖)란 작성연대가 오래되고, 특히 지도제작의 기술사적(技術史的)인 면에서 현대지도와 구별되는 지도를 일컫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까지 제작된 지도들을 ‘고지도’라 부른다. 물론 우리나라 지도의 역사는 바위에 새긴 그림, 즉 암각화에서 시작된다. 즉 3,000년 전의 선사인들이 새긴 것으로 추정하는 울산시 언양읍 대곡리의 반구대암각화(국보 제285호)는 선사시대의 언양 지역의 환경과 당시의 생활모습을 알려주는 훌륭한 지도이다.
 
그러나 단독으로 독립된 지도는 조선시대 이후에 제작된 것만이 현재까지 전하고 있으며,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같은 대규모 전쟁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조선 전기의 지도도 극히 드물다. 그리고 우리나라 지도의 경우 지도 제작자와 제작시기를 명시하는 서양지도와 달리 대부분 지도 제작자와 제작시기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서양에서 지도는 국가의 힘이자 동시에 자본주의의 결과물로 성행하였으나, 조선시대의 지도 제작은 후기 민간에서 제작되기는 하였지만 사실상 왕만이 가질 수 있었던 권한이었다.
 
‘조선전도’란 조선 전체를 대상으로 그린 지도로, 우리나라 국토를 표현하고 상징한다. 따라서 조선전도에는 선조들의 국토 인식, 표현 방식이 반영되어 있으며, 그러한 표현을 가능하게 했던 과학 기술, 지도제작 기술, 예술적 표현, 사회적 수요와 분위기, 사상적 공감대 등이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조선전도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조선 초기부터 국가에서 정확한 지도 제작을 목적으로 하여 제작하였던 사실적이고 정확한 조선전도이며, 둘째는 국가에서 만든 지리지에서 출발하였지만 후에 민간에서도 널리 유행하여 오늘날 아틀라스와 같이 독립된 지도책으로 제작된 ‘동람도(東覽圖)’ 유형의 지도이다.
 
사실적이고 정확한 조선전도의 제작 노력은 조선의 건국과 함께 시작했다. 새로운 왕조의 개창과 국토의 확장은 행정 · 군사적으로 가장 최신의 지도 제작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압록강 상류에 사군(四郡)을 설치하고, 두만강 하류에 육진(六鎭)을 개척하기 위해 이 지역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필요했다.
 
이에 1424년(세종 16) 구체적인 지도 제작이 시작되었고, 1463년(세조 9) 정척(鄭陟, 1390~1475)과 양성지(梁誠之, 1414~1482)가 조선전기의 측량성과를 반영한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완성하였다. 그러나 현재 이 지도는 현존하지 않으며, 《동국지도》와 같은 유형의 지도로 추정되는 지도가 국사편찬위원회에 《조선팔도지도》와 《조선방역지도》 두 종이 전하고 있다.
 
이 지도들은 북쪽 지방이 실제보다 남북으로 압축하여 그려져 있어서 압록강과 두만강의 모습에 오류가 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면 하계망이 비교적 정확하며, 산줄기는 풍수적 지리인식에 기초한 연맥으로 표현되어 있다. 《조선방역지도》의 경우 울릉도가 생략되어 있지만, 《조선팔도지도》에는 강원도 울진의 동쪽 해안에 울릉도와 비슷한 크기의 우산도가 그려져 있다(그림 1). 북부지방이 압축된 형태로 제작된 또 다른 지도인 《조선팔도총람지도(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에서도 울릉도와 우산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1).
 


그림 1. 필사본 《조선팔도지도》 목판본 《조선팔도총람지도》

 


이 지도는 1673년(현종 14)에 김수홍(金壽弘, 1626~1690)이 편찬한 《조선팔도고금총람도》와 같은 유형의 목판본 지도이다. 이 지도의 특징은 첫 번째 목판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 시기 목판본의 경우 간행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지도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경우에만 목판본으로 간행 될 수 있었다. 또한 두 번째 특징은 수도인 경도(京都)의 모습으로, 다른 지역보다 그 크기를 크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사실적인 지도 제작과 함께 주요 지역에 대한 인식이 지도에 반영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우산도의 경우 《조선팔도지도》와 달리 울릉도의 북쪽에 울릉도와 비슷한 크기로 그려져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동국지도(古2702-7)》와 《여지도(한貴古朝61-3)》 역시 울릉도의 서쪽에 우산도가 그려져 있다(그림 2).
 

그림 2. 《동국지도》 《여지도》

 


《동국지도》의 경우 북쪽 지방의 모습이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그림 1에 비해 정확해져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우산도의 크기가 울릉도에 비해 조금 작게 그려져 있다. 《여지도》는 6책으로 구성된 전국 군현 지도책으로, 제1권에 조선전도인 <조선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북부지방은 조선전기에 제작된 전도들과 같이 심하게 압축되어 있으며, 우산도는 《동국지도》와 같이 울릉도의 서쪽에 울릉도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제6권의 강원도 지도책 속의 울릉도 지도에서는 우산도를 울릉도의 동쪽에 표시하였다.
 
두 번째 조선전도의 유형은 민간에서 지도를 만들 때 원형이 되었던 ‘동람도(東覽圖)’ 유형의 지도이다. 「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초기부터 지속된 관찬지리지, 특히 전국지리지 편찬 사업의 결실로서, 조선 전기 지리지의 집성편으로 불린다. 1481년에 완성된 이후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전55권으로 증보, 1531년에 「신증동국여지승람」으로 간행되었다. 이 지리지에는 조선전도인 <팔도총도(八道總圖)>와 8도의 각 도별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이는 지지(地誌)를 보완하기 위한 부도로 제작된 것으로, 그 내용과 표현이 매우 소략하다.
 
전도의 경우 사전(祀典)에 기재되어 있는 악(嶽) · 해(海) · 독(瀆)과 명산대천(名山大川) 등을 표시하고 있고, 각도(各道) 지도에는 군현의 진산과 사방으로의 도달 지역명을 간략하게 표시하였다. 그리고 섬의 경우 서해에는 교동 · 강화도 · 군산도 · 흑산도, 남해에는 진도 · 제주도 · 남해도 · 거제도 · 대마도, 그리고 동해에는 울릉도와 우산도가 그려져 있으며, 여기에는 우산도와 울릉도 2도 인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그림 3).
 

 

그림 3. 동람도형 지도책에 포함되어 있는 전도에 그려진 우산도(독도)의 모습



이는 울릉도와 우산도가 남해와 서해의 중요한 섬들과 마찬가지로 동해상의 중요한 섬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산도의 크기는 울릉도와 비슷하거나 또는 울릉도 보다 조금 작게 그려져 있으며, 동람도형 도별도와 달리 전도에서는 대부분 그 위치가 정척 · 양성지의 《동국지도》 계열과 마찬가지로 울릉도의 서쪽에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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