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렌델<작품·줄거리·작가·등장인물>소개, 작품 속 명문장
Introduction to world literatu 2025. 1. 6.우리는 흔히 역사를 인간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만약 역사를 ‘인간이 아닌’ 존재의 눈으로 본다면 어떨까요? 존 가드너의 《그렌델》은 바로 이러한 독특한 상상력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고대 영웅 서사시 《베어울프》에 등장하는 괴물 그렌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에 도전하고 인간 존재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질문합니다. 마치 타인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처럼, 우리는 그렌델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낯설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는 괴물, 인간과 동물의 경계에 선 존재인 그렌델의 고뇌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됩니다. 이 글에서는 《그렌델》의 줄거리, 주요 주제, 그리고 작품이 던지는 심오한 질문들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작품 소개
《그렌델》은 고대 영어로 쓰인 최초의 서사시 《베어울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20세기에 들어 문학의 ‘경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들을 다시 쓰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중세 문학 연구가인 존 가드너는 고대에 쓰인 최초의 서사시에 나오는 최초의 타자 ‘그렌델’을 주인공으로 삼음으로써, 인간 역사의 기원을 ‘인간이 아닌’ 타자의 입장에서 반추하고 있다. 《베어울프》는 영웅 베어울프가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 그렌델을 처치하는 내용이지만, 《그렌델》은 인간도 동물도 아닌 괴물 그렌델이 인간들과의 충돌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통찰하며 절망하고 죽어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경전에 등장하는 주변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타자’라고 인식되어 온 존재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작품들 중에서도 《그렌델》은 한층 높은 급진성을 보여주는데, 이는 인종이나 성, 계급이라는 범주를 뛰어넘어 ‘인간’ 자체의 타자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과 인간의 경계에 있는 존재인 그렌델의 이름은 ‘지구의 가장자리를 걷는 자(earth-rim-walker)’라는 어원을 지니고 있다. 경계에 있기 때문에 모든 곳에 속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인 그렌델은 역설적으로 인간을 상징하고 있다. 육체는 동물이되 정신은 상징 질서 속에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렌델》은 이와 같은 괴물의 존재를 통해 ‘인간’ 혹은 ‘인간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묻고 있다.
줄거리
인간의 언어를 말할 줄 아는 괴물 그렌델은 나무 사이에 발이 끼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덴마크의 흐로드가르 왕과 인간들을 만난다. 어미의 도움으로 살아난 그렌델은 그 후부터 인간들을 관찰하며 인간들의 기이한 역사를 관조하게 된다. 어느 날 시인인 셰이퍼가 흐로드가르 왕을 찾아오고, 그렌델은 셰이퍼의 아름다운 노래와 시에 매혹된다. 구원받고 싶어진 그렌델은 버림받은 인간의 시체를 지고 연회장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귀의하려고 하지만,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들에게 거부당한다.
절망한 상태에서 용을 만난 그렌델은 용과의 대화에서 인간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인간의 파괴자로 나서게 된다. 이후 그렌델은 용사인 운페르트, 사제인 오크, 공물로 바쳐진 웨알데오우 왕비 등과 접촉하며 자기 존재에 대해 더 깊은 통찰을 하지만 외로움과 슬픔, 권태에 짓눌린다. 이때 그렌델은 스웨덴 남부 예이츠족의 영웅 베어울프가 자신을 처치하기 위해 다가오는 것을 감지한다. 베어울프와의 싸움에서 한쪽 팔을 뜯긴 채 도망쳐 나온 그렌델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절벽에서 몸을 던진 뒤 죽음을 맞이한다.
작품 속 명문장
나는 이제 새로 태어난 듯 아주 굉장한 무엇인가가 되어버렸다. 이전에는 다양한 가능성 사이에서, 내가 아는 차가운 진실과 마음을 빨아들이는 셰이퍼의 마술 사이에서 어물거리고 있었지만 이제 그런 때는 지났다. 나는 연회장을 파괴하는 자, 왕을 약탈하는 자, 그렌델인 것이다!
《그렌델》, 펭귄클래식코리아
그녀는 겨울 언덕에 밝아오는 새벽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예전에 셰이퍼의 노래가 그랬듯이, 이제는 그녀라는 존재가 내 가슴을 갈가리 찢었다.
《그렌델》, 펭귄클래식코리아
이제 다시 우리는 혼자다. 버림받은 채로.
《그렌델》, 펭귄클래식코리아
등장인물
그렌델
산속에서 어미와 함께 살고 있었던 괴물로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다. 인간과 최초로 접촉한 후 인간과 동물의 경계선에 머물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운명에 절망하게 된다. 덴마크의 흐로드가르 왕궁을 습격함으로써 괴물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립한다.
셰이퍼
‘형태(shape)를 만드는 자’라는 의미의 이름을 지닌 눈먼 시인이자 하프 연주자로 아름다운 환상과 허구로 그렌델을 매혹하고 슬픔을 느끼게 한다.
운페르트
쉴드족의 용사로 그렌델이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최초의 인간이다. 그렌델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무사히 돌려보내지는 치욕을 당한다.
베어울프
예이츠족의 용사로 유일하게 그렌델과 대적할 수 있는 인간이며, 그렌델의 정신을 꿰뚫어 본다.
작가 소개
존 가드너(John Champlin Gardner Jr., 1933. 7. 21.~1982. 9. 14.)
1933년 뉴욕 주 바타비아에서 태어났다. 셰익스피어 애호가로 문학 낭독회를 열곤 했던 양친의 영향 아래 성장했으며, 워싱턴 대학을 졸업하고 아이오와 대학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6년부터 시, 소설, 희곡 등 여러 작품을 발표했고 중세 문학 연구자로서 중세 영문학 작품과 길가메시 신화를 번역 출간했다. 1971년에 출간한 《그렌델》로 작가적 명성을 떨치게 되었으며, 이 소설은 2006년 오페라 〈그렌델〉로 제작되었다. 1976년 《10월의 빛》으로 미국 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평생에 걸쳐 미국 여러 대학에서 소설 작법을 강의했으며, 가드너의 《소설가와 소설 쓰기에 대하여》는 글쓰기 교재의 고전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1978년에 쓴 문학 비평서 《도덕주의 소설에 대하여》는 문학계에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가드너는 〈뉴욕타임스〉의 표지까지 등장할 만큼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가드너는 이 책에서 “소설의 도덕성이란 종교적이거나 문화적인 협소한 지평에서의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고, 그런 의미에서의 도덕적 감각을 지닌 현대 작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급진적인 기교와 매끄러운 리듬을 자랑하며 소설의 영속성에 대한 주의 깊은 관심으로도 유명한 가드너의 작품들은 늘 예술이 가진 구원과 속죄의 힘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1982년 펜실베이니아 서스쿼해나 근처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
《그렌델》은 괴물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독창적인 작품입니다. 존 가드너는 그렌델이라는 독특한 인물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의 문제점, 그리고 언어와 의미의 관계 등 심오한 주제들을 탐구합니다. 마치 철학적인 우화처럼, 《그렌델》은 독자들에게 깊은 사유 거리를 제공하며,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고전 서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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