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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지도에는 독도가 없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다양한 지도에는 울릉도와 함께 그려진 우산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우산도의 위치나 모양은 지도의 제작 시기와 유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우산도의 위치와 모양이 비슷하게 표현되었다. 우선 우산도의 위치는 울릉도의 동쪽에 위치하며, 조선 초기 울릉도와 비슷한 크기로 그려졌던 우산도의 크기 또한 울릉도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졌다. 그렇다면 일본은 우산도 즉 독도에 대해 얼마나, 또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그들이 인식하고 있었던 우산도(독도)는 지도에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일본에서 제작된 고지도 속의 독도 모습을 통해 당시 일본인들의 인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림 1의 <팔도총도>는 1530년에 제작된 조선시대의 대표적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되어 있는 조선전도인 <팔도총도> 그 모습이 매우 유사하여, 마치 조선에서 제작된 지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지도는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명령으로 구끼[九鬼喜隆] 등이 1592년에 제작한 지도를 1872년에 재모사한 것이다.
조선전도의 모습뿐만 아니라 울릉도와 우산도의 모습 또한 조선 초기에 제작된 지도와 유사하다. 즉 울릉도의 서쪽에 우산도가 그려져 있으며 그 크기 또한 울릉도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이 조선의 전체적인 모습을 비롯하여 울릉도와 우산도의 모습, 그리고 동남쪽에 그려진 대마도의 모습까지 이 지도는 당시 조선에서 제작한 지도를 바탕으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점은 조선에서 제작한 지도를 모사하는 과정에서 우산도와 대마도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그렸다는 것이다.
두 번째 지도는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그린 지도들이다. 하야시 시헤이는 그의 누나가 센다이번[仙台藩] 영주의 측실로 들어간 것을 인연으로, 형과 함께 센다이번에서 일하였다. 그러나 센다이번에서 교육과 경제정책에 관한 그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자 관직을 그만두고 전국을 걸어서 여행하였다고 한다. 러시아의 위협에 대해 알리며 『삼국통람도설(三國通覽圖說)』 · 『해국병담(海國兵談)』 · 『부국책(富國策)』 등의 저서도 저술하였고, 그리고 『삼국통람도설』에는 우리나라 전도, <삼국접양지도> 등 5개 지도가 포함되어 있다(그림 2).
그림 2의 지도는 하야시 시헤이가 1785년에 제작한 것으로, 왼쪽은 우리나라 전도로서 압록강과 두만강이 거의 일직선으로 그려지면서 북쪽 지방이 압축된 느낌의 조선 전기에 제작된 지도들과 유사하다. 경위도의 위선을 사선으로 그리고 있으며, 다른 지도에 비해 울릉도를 크게 그리고 있는 점 또한 특징적이다. 울릉도 안에는 ‘울릉도(鬱陵島) 천산국(千山國)’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또한 도별 경계선을 검정색의 굵은 선으로 뚜렷하게 표시한 점도 이 지도의 특징이다.
그리고 오른쪽 지도는 『삼국통람도설』에 포함되어 있는 부도(附圖)이다. 이 지도는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중국의 일부분이 그려진 지도로, 삼국의 위치와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지도에 사용한 색이다. 이 지도에서의 색은 곧 자국의 영토를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서로 다른 색을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 모습은 개략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황색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우리나라 동쪽에 그려진 섬 또한 중요하다. 우리나라 동쪽에 황색으로 그려진 섬들이 보인다. 그 가운데 한국과 일본 사이에 그려진 2개의 섬은 황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큰 섬에는 ‘죽도(竹島)’라고 표기되어 있고, 그 동쪽에 작은 섬이 표시되어 있다. 이 2개의 섬은 지도에 그려진 위치상 울릉도와 독도를 나타낸 것으로, 이 지도에서는 울릉도를 ‘죽도’로 표기하고 있다.
조선과 같은 황색으로 표시된 이 섬의 왼쪽에는 ‘朝鮮ノ持也(조선의 것)’, 그리고 아래쪽에는 ‘此島ヨリ隱州ヲ望又朝鮮ヲモ見ル(이 섬에서 은주가 보이고 또 조선도 보인다)’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즉 지도에 표시한 색과 여백에 기록한 주기 모두 이 섬이 조선의 땅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으며,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일본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도들 이외에도 국립중앙도서관에는 19세기에 일본에서 제작된 지도 가운데 울릉도와 우산도를 조선의 땅으로 그리고 있는 지도들을 찾아 볼 수 있다(그림 3).
그림 3의 왼쪽 지도인 《조선국세견전도》에서는 ‘울릉도’를 섬 안에 표기하고 다시 그 아래쪽에 ‘죽도’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울릉도 남쪽에 작은 섬 하나가 더 그려져 있는데 이 섬은 ‘우산도’라고 표기되어 있다.
오른쪽 지도인 《조선여지전도》에는 울릉도를 그린 후 그 아래쪽에 ‘죽도(竹島) 일명(一名) 우산도(鬱陵島)’라고 표기하여 울릉도를 죽도로 표기하였다. 그리고 울릉도의 왼쪽에 작은 섬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우산도(于山島)’라고 표기하였으며, 울릉도의 동남쪽에 ‘송도(松島)’를 지명과 함께 섬이 그려져 있다. 즉 이 지도에서는 울릉도의 동남쪽에 표시한 송도가 오늘날 독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울릉도 왼쪽에 표시한 우산도와 함께 조선의 영토로 그려져 있다.
이 지도에서 독도가 죽도가 아닌 송도로 표기 된 것은 일본이 독도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독도를 불렀던 명칭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서 독도를 인식하면서 처음 불렀던 독도의 명칭은 송도[마쓰시마]였고 죽도[다케시마]는 울릉도를 칭하는 지명이였다. 그러다가 울릉도를 송도[마쓰시마]. 독도를 죽도[다케시마]로 바꿔 불렀는데, 이 지도에서는 독도가 죽도가 아닌 송도로 표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한일병합 시기에 육지측량부에서 제작한 지도에는 독도가 어떻게 그려져 있을까? ‘육지측량부출판지도구역일람도’는 1926년에 작성되어 1930년에 수정된 이후 5~10년 단위로 제작되었다. 이 지도는 일본정부 참모본부 육지측량부가 일본의 각 지방 지도를 작성하기 위해 구역을 나눈 일람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지도의 구역 경계는 곧 그 시대의 상황과 사회의 인식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지도이다(그림 4).
이 지도는 조선, 일본, 북해도, 대만 등으로 나누어 구획되어 있으며, 울릉도와 죽도(竹島 - 독도)가 표기되어 있는 부분은 일본이 아닌 조선 지도이다. 따라서 이는 1905년 독도가 시마네현에 강제로 편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은 독도를 일본이 아닌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일본에서 제작한 고지도에서 우산도(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표시한 지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일본 역시 우산도가 조선의 영토였음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며, 지도는 그 당시 일본의 생각을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은 것이다. 또한 근대 이전의 지도뿐만 아니라 1945년 직후에 일본에서 제작한 지도에서 독도를 찾아 볼 수 없다(그림 5).
그림 5 지도는 일제 패망 후 일본의 민간 지도회사인 일본지도주식회사가 발행한 일본 시마네현지도이다. 그러나 이 지도에는 일본주장에 의한 1905년 시마네현에 편입했다는 독도는 어디에도 표기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일본 스스로가 독도는 조선의 땅임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그들이 제작한 지도가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