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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 지도에 그려진 독도의 모습은···
♪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 백리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동경 백삼십이 북위 삼십칠 ··· ♬
한번쯤은 흥얼거렸을 노래, ‘독도는 우리 땅’ 2절 첫 부분에 독도의 주소가 언급된다. 가사처럼 현재 독도의 행정구역상 주소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에 걸쳐있으며, 동경 131°51'~131°53', 북위 37°14'00"~37°14'45"에 위치한다. ‘독도는 우리땅’의 가사처럼 독도가 경상북도에 소속된 것은 1914년 이후이며, 그 이전까지는 강원도에 소속되어 있었다.
조선시대 울릉도 일대는 강원도 울진현 소관이었고, 19세기 후반 일본의 진출이 빈번해지자 1882년(고종 19)에 울릉도에 도장제(島長制)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1884년에는 울릉도 첨사(僉使) 겸 도장(島長)을 따로 두었다. 1895년에 도감(島監)으로 바꾸었다가 1900년에 울도군(鬱島郡)으로 승격, 강원도에 부속시킴으로써 비로소 독립된 군이 되었다. 1906년에 강원도에서 경상남도로 이관되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 때 경상북도로 소속이 바뀌고, 1915년에 도제를 실시함에 따라 도사(島司)를 두었다가, 1949년에 다시 울릉군으로 개칭되었다. 따라서 울릉도와 독도가 현재 행정구역상 경상북도의 주소를 사용한 것은 1914년 이후로,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는 강원도 지도와 강원도 읍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강원도 지도는 도(道)를 단위로 제작한 도별지도로 구분되며, 도는 우리나라 문화, 생활권, 지역공동체의 중심 단위인 시 · 군을 묶은 상위 행정체제이다. ‘도(道)’라는 개념은 고려시대인 1018년 ‘오도양계제’의 실시로 도입되었지만, 실제적인 행정구역상의 정착은 조선시대에 이루어졌다. 태종대에 정립되어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도제(道制)는 한국의 지역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문헌상으로는 조선전기부터 양계지방을 비롯하여 제주도를 포함한 전라도까지 도별도가 제작되었다고 하지만 현재 조선전기에 제작된 도별, 지역별 지도는 전하는 것이 없다. 지금까지 전하는 가장 오래된 도별지도는 전국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포함되어 있는 도별도이다. 이후 도별도는 민간에서도 유행하였던 ‘동람도’ 유형의 도별도와 18세기 중반 이후 사실적이고 과학적인 형태의 정상기형 도별지도가 그 필요에 따라 함께 제작되었다.
‘동람도’ 유형의 도별도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되어 있었던 지도와 비슷한 형태의 지도를 일컫는 말이다. 이는 수록되어 있었던 지도의 판심에 ‘동람도(東覽圖)’라고 쓰여 있었던 것에서 시작된 것으로, 지리지에 부도로 제작되었던 만큼 그 형태가 간략하고 군현의 이름, 진산, 하천, 주요 도서와 사방으로 연결되는 지역 등을 간략하게 표시하고 있다. 간략하다는 의미는 지도의 내용이 부족하다는 의미보다는 꼭 필요한 내용이 압축적으로 지도에 포함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동람도’ 유형의 지도는 그 제작 목적에 따라 역도 · 진보 · 포구 · 일정(日程)과 같은 필요한 정보를 가감하여 제작하였다.
‘동람도’ 유형의 강원도 지도에서 울릉도와 독도의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선 첫 번째는 《조선지도》와 《보솔장지도》에 포함되어 있는 강원도 지도에서는 조선전기 전도와 같이 우산도(독도)가 울릉도의 서쪽에 울릉도와 비슷한 크기 또는 그 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그려졌다(그림 1).
두 번째는 《여지도》와 《여지고람도보》에 수록된 강원도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형태로, 우산도(독도)가 울릉도의 동쪽 또는 서쪽이 아닌 남쪽에 그려져 있는 형태이다. 이 형태의 경우 동쪽이나 서쪽에 그려지는 우산도의 모습은 대부분 세로로 긴 형태이지만, 남쪽에 그려져 있는 우산도의 모습은 동서로 긴 타원형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그림 2).
세 번째는 17세기 말 안용복 사건 이후 조선후기 울릉도와 독도 인식에 대한 변화가 생기면서 독도의 위치와 크기 등도 지도에 반영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우산도(독도)는 울릉도의 동쪽에 그려졌고, 그 크기도 이전에 울릉도와 비슷한 크기에서 울릉도보다 훨씬 작은 크기로 표현되었다(그림 3).
이처럼 민간에까지 유행하였던 ‘동람도’ 유형의 지도에 우산도의 모습은 그 위치와 크기가 다양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울릉도와 함께 중요한 섬으로 인식되어 전도에서 뿐만 아니라 도별도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울릉도와 함께 우산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도별지도 유형 가운데 두 번째는 사실적이고 과학적으로 제작된 도별지도이다. 조선 초기의 국가적인 지도 제작 사업으로 정확한 지도들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전하고 있지는 않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지도들은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백리척을 바탕으로 지도를 제작한 정상기의 영향이 크다. 여기서 사실적이고 과학적인 지도란 축척에 관계없이 종이의 크기에 맞추어 지도를 그림으로써 부정확했던 지도에서부터 ‘백리척’이라는 일정한 축척을 사용하여 지도를 제작한 것이다.
따라서 백리척을 사용하여 제작한 도별도는 각 도별 지도를 합하면 전도가 되도록 고안되었으며, 축척인 백리척을 표시하여 실제 거리를 계산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그리고 이 지도들은 ‘동람도’ 유형의 지도들에 비해 정교하며 그 내용 또한 풍부하다. 정확하고 과학적인 도별도의 대표적인 지도는 정상기가 제작한 《동국지도》 중 ‘팔도분도’ 이며, 이 유형의 지도들은 오류를 계속 수정하면서 조선말까지 비슷한 모습으로 모사되었다.
일정한 축척을 바탕으로 사실적이고 정확한 정상기 유형의 지도에서 우산도(독도)의 모습은 대부분 울릉도의 동쪽 또는 울릉도 동쪽 끝 바로 윗부분에 표시되어 있다. 울릉도 동쪽 끝 바로 위에 우산도를 표시한 경우에 섬의 모양을 그리고 그 안에 ‘우산도’라고 표기하거나 또는 섬을 따로 그리지 않고 ‘우산도’라는 지명만을 표기하고 있다(그림 4).
일정한 축척을 적용하였다고는 하지만 울릉도의 위치의 경우 종이 크기를 감안하여 해안에 가깝게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실제 거리와의 혼돈을 줄이기 위해 지도상의 위치는 해안에 가깝게 그려져 있지만, 《동국지도》의 강원도 지도와 같이 ‘울진에서 바람을 타고 2일을 가면 도착한다’라고 주기를 통해 실제 거리 정보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지도》의 <관동도>,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팔도지도》의 <강원도> 지도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울릉도의 동쪽에 우산도가 위치한 지도들도 확인할 수 있다(그림 5).
한경전도 · 관북도 · 일본국도와 8도를 포함하여 총 11장의 지도로 구성되어 있는 《해동전도》에는 울릉도의 동쪽에 울릉도보다 좀 작은 크기의 우산도가 그려져 있다. 반원의 형태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종이의 크기를 고려한 것으로 보이며, 울릉도에는 ‘죽전’과 ‘주토굴’이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강원도의 윤곽이 매우 부정확하게 그려져 있는 지도인 《해동여지도》의 경우에는 지도의 정확도 보다는 지도 우측에 수록한 ‘이정표’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생긴 오류로 보인다. 전체적인 윤곽은 부정확하지만 지역간 도로는 비교적 자세하게 그려져 있으며, 울릉도와 독도 위 여백에는 울릉도의 연혁과 울릉도 중앙에 위치한 중봉을 기준으로 울릉도의 크기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 제작된 도별도에는 우산도가 울릉도와 함께 그려져 있으며, 이는 우산도가 동해안에 위치한 울릉도와는 별개의 섬인 동시에 우리나라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도별도에 나타난 우산도의 위치 변화를 통해 시기별 조선시대 울릉도 · 독도 인식 변화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동람도 유형의 지도와 정상기 유형의 지도에서 보았듯이 매 시기마다 단일한 인식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인식이 중첩적으로 반영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우산도에 대한 국가의 관심도, 지역의 상대적 중요성 등과 같은 사회적 조건과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며, 지도는 그러한 사회적 상황과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산도의 위치가 울릉도를 기준으로 조금 다르게 표현되기는 하였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우산도는 울릉도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별개의 섬으로 우리나라 땅이었던 것이다.